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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내는 기획서, 문제의 정의, 자연스러운 해결책

by 지식타치 2024. 4. 30.

1. 찍어내는 기획서

첫 직장이 컨설팅사였다. 지역 브랜딩을 담당했다. 낙후된 지역의 참신한 스토리를 발굴하여 이를 테마 사업으로 연결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특산물이 지역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일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다. 지역은 바뀌지만 우리 컨설팅사에서 제출하는 제안서는 바뀌지 않는 것이다. 틀은 유지하되, 내용은 해당 지역에 맞춰 수정을 거듭했다. 두툼한 제안서가 뚝딱 완성됐다. 워낙에 제안서 틀의 완성도가 높긴 했다. 입사 전부터 만들어진 제안서는 여러 번의 경쟁PT을 거쳐 완성도를 끌어올렸을 것이다. 게다가 제안서를 심사하는 심사단은 면밀한 검토보다는 제안서의 결론만 압축적으로 평가했기에 이런 형식적인 제안서를 제출해도 크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의 시선에서는 억 단위의 종합개발사업 운영권을 이런 제안서로 따낸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나도 그대로 따라 했다. 잘 만들어진 제안서의 틀에 데이터를 입력했다. 상황에 따라 틀을 약간씩 수정하였다. 이런 제안서는 신속하게 작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완성도를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거듭된 고민으로 도출한 기획하고는 거리가 멀다. 깊이 있는 기획력을 녹여낸 기획서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기획서는 나쁜 기획서인가? 아니다. 이런 기획서도 얼마든지 좋은 기획서이다. 틀을 만들고 데이터를 수정한다고 급이 떨어지는 기획서는 아니다. 찍어낸다고 힘을 덜 들인 게 아니다. 결론적으로, 틀만 그대로 따라가도 "문제의 정의""해결책"이 포함된다면 큰 문제는 없다. 

 

[출처] Unsplash

 

2. 문제의 정의

 

기획은 2형식이다(남충식 저 I 휴먼큐브)를 보면 모든 기획의 본질을 딱 2개로 정의하고 있다. 첫 번째는 문제 정의, 두 번째는 문제의 해결이다. 완전히 동의한다. 기획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느껴진다. 거대한 산을 올라야만 하는 기분이다. 그러나 기획하는 목적은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문제가 없는 기획은 없다. 문제가 없다면, 문제의 정의를 아직 들여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문제를 찾지 못하는 게 아니라, 문제의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예를 들어, 한때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개그 프로그램과 대학가요제는 왜 폐지되었나?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시대적인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도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곤 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다음과 같은데 재밌게 만들면 된다. 시대적인 흐름에 역행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 딱 봐도 애매한 해결책이다. 해결책을 보면 문제를 어떻게 정의했는지를 들여야 볼 수 있다. 속 시원한 해결책은 갑자기 떨어지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문제의 정의에서 비롯된다. 한 줄기 빛과 같이 번뜩 떠오르는 해결책을 기다리는 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문제를 정의했다면 계속 "왜"라고 물어봐야 한다. 왜?가 더이상 들어갈 틈이 없을 때까지 "왜"라고 물어봐야 한다. 기획서는 이렇게 뾰족한 문제의 정의로 시작해야 한다.

 

[출처] Unsplash

 

3. 자연스러운 해결책

 

문제의 정의가 제대로 되었다면, 해결책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축구 국가대표로 취임한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체력이라고 정의했다. 언론과 축구 관계자는 히딩크 감독의 진단에 뜻밖이었다. 한국 축구는 체력은 문제없고, 기술력 부족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딩크는 도리어 기술은 좀 더 다듬으면 되는 정도지만, 체력은 국제적인 수준 이하라고 판단했다. 단순한 체력이 아닌, 축구 경기를 위한 체력이 길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축구 경기 특성상 짧은 시간에 강도 높은 달리기를 하고, 잠깐의 휴식에 체력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한국 축구선수는 이런 똑똑한 체력이 아닌, 투지를 앞세운 체력으로 단련했기 때문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체력 훈련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 과정 중에 신인선수가 새롭게 발탁되고, 당연히 국가대표로 선발될 줄 알았던 선수가 탈락하기도 하였다. 히딩크 감독을 향한 많은 비난과 조롱도 있었지만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 2002년 월드컵은 한국 축구 역사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다시 없을 값진 추억이 되었다. 기획서에서 해결(결론) 부분은 하이라이트다. 그러나 결론은 앞서 전개한 문제의 정의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도출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드라마틱한 해법을 제시하는 해결사보다는 문제의 정의를 꼼꼼한 파악한 자연스러운 결과여야 한다.

 

* 본 글은 기획은 2형식이다(남충식 저 I 휴먼큐브)를 많이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